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오랜 기간동안의 투쟁을 거쳐 기본적 인권으로서 자유권적 시민권을 얻었으나, 생존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수단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유는 형식적이고 공허한 것이었다. 여기서 국민이 가진 기본적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생활권적 기본권의 개념이 강조되었고 이 생활권적 기본권은 복지국가의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 기본권으로 확인된다. 또한 이러한 생활권적 기본권은 헌법 제10조가 규정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의 보장을 위한 것이고 헌법 제34조에 의한 사회보장·사회복지권에 의하여 구체화된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는 사회보장기본법은 제3조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질병ㆍ장애ㆍ노령ㆍ실업ㆍ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ㆍ공공부조ㆍ사회복지서비스 및 관련복지제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사회보험제도는 국민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방식에 의하여 대처함으로써 국민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고 공공부조제도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하에 생활유지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로 하고 있다. 한편 사회복지서비스제도는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에게 상담ㆍ재활ㆍ직업소개 및 지도ㆍ사회복지시설이용 등을 제공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이고, 관련복지제도는 보건ㆍ주거ㆍ교육ㆍ고용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각종복지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사회보장제도는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추구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반 복지제도를 보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에 근거하고 있는 사회보장수급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복지국가의 이념을 바르게 달성하는 것이 된다.
사회보장행정기관, 위법·부당한 처분에 대한 권리구제에 소홀
일반행정에 비하여 사회보장에 관한 행정처분은 전문성과 행정기술의 특수성이 있음에 따라 관련 행정처분에 불복하는 경우에 대하여 처분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이의신청위원회, 국민연금관리공단에는 국민연금심사위원회가 각각 1차 심판기관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에는 재심판기관으로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와 국민연금재심사위원회를 설치하여 복심구조(覆審構造)로 사회보장 관련 행정처분에 대한 권리구제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이들 기관에 설치된 권리구제절차의 운영실태를 이번 국정감사과정에서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로 대부분의 사회보장 행정심판기구는 실제 회의를 소집하고 심사위원들간에 실질적인 논의를 거쳐 심판청구사항을 심리하지 않고 서면심리로 처리하여 심리절차를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논의를 거쳐 심판청구사항을 심리하지 않고 서면심리로 심리절차를 운영한 것은 법령이 정하고 있는 심리절차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상당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서면결의는 사무국 직원들이 심사청구인의 주장내용을 행정적인 차원에서 검토하고 구제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먼저 결론지은 것을, 심사위원들이 단지 형식적으로 추인해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준사법절차인 행정심판제도의 운영에 있어서 서면결의는 정당한 심의절차로 보기 어렵다. 또한 각 권리구제기구에서 심사회의의 소집과 의사정족수 및 의결정족수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법령에 의할 때에도 심사회의는 서면결의가 아닌 실제 회의의 소집에 의한 심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로 행정심판제도를 통하여 권리구제를 도모하는 이유로 행정소송에 비하여 권리구제의 신속성과 경제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이들 사회보장 행정심판기관 중 대부분은 심판청구건을 법정기간을 초과하여 처리하여 신속한 권리구제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심사청구건은 원칙적으로 60일 이내에(부득이한 경우 30일 연장가능) 처리하여야 함에도 대부분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2년 정도까지 기간이 소요되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보건복지부와 산하 사회보장기관이 소관하고 있는 특별행정심판절차는 복심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1차 심사와 2차 심사에서 모두 법정기간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하여 특별행정심판절차를 운영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로 일부 기관에서는 특별행정심판사항으로 심의하여 신중하게 처리할 경우에 드는 행정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특별행정심판사항으로 처리해야할 사건을 일반민원사항으로 간편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권리구제절차 자체를 거의 무력화시키는 현상이 발생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심판청구사항을 전담하는 행정기구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그 조직과 인력이 부족하고 또한 인력의 전문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사회보장 특별행정심판제도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고 이들은 권리를 침해받는 경우에 행정소송 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권리구제를 도모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사례가 있게 될 우려가 큰 계층에 속한다. 따라서 사회보장행정의 대상자에게 처분에 대하여 불복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행정심판제도를 이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야 하나, 조직과 인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구제제도에 대한 홍보가 아주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로 특히, 기본적인 공공부조제도를 규율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아예 특별행정심판절차를 설치하지 않고 사회보장제도에 대하여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행정심판절차(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에 그 권리구제를 맡기고 있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특성에 맞는 권리보호를 수행하기가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
사회보장 권리구제제도 시급하게 개선해야
사회보장제도가 구비되어 사회보장행정과 관련이 되는 대상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각 사회보장제도의 내실화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국민의 권리의식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있음에 따라, 앞으로 각 사회보장 행정처분과 관련한 권리분쟁도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각 사회보장 행정처분은 전문적이고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어 일반행정처분에 대한 것보다 전문적인 심의가 요망된다. 또한, 사회보장 행정구제절차를 현재와 같이 부실하게 운영할 경우에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처분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아 그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게 되고, 결국 사회보장제도를 통하여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법·부당한 사회보장행정처분으로부터 이들 청구인들을 신속하고 적정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적합한 개선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단기대책으로는 보건복지부와 산하 사회보험 행정기관에서 사회보장특별행정심판제도를 담당하는 직제와 인력을 전문화하고 대폭 보강·배치하도록 조치하고, 각 심판위원회의 구성에 대하여 검토(위원수의 조정, 위원의 전문화 등)하여 적정수의 전문가로 위원회를 재구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준사법절차로서 심의·의결절차를 엄격(서면결의의 금지 등)하게 하여야 하며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에 대한 특별행정심판절차를 설치·운영하는 것을 긴요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편, 보다 근본적인 개선대책으로, 객관적·전문적인 관점에서 건강보험제도, 국민연금제도와 의료급여 및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사항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업법 소관 사항과 향후 도입할 노인요양보장제도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분쟁사건을 심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에 독립적이고 종합적인 사회보장행정심판기구(가칭, “사회보장심판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 사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국세기본법에 의한 국세심판소를 참고할 수 있고 외국의 사례로는 일본의 ‘사회보험심사관 및 사회보험심사회법’에 의한 권리구제방식으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에서 건강보험, 국민연금, 선원보험 등을 포괄하여 종합적으로 사회보장에 관한 권리구제제도를 운용하는 것과 사후의 권리구제절차를 마련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나아가 독일의 ‘사회보장행정절차법’과 같이 위법·부당한 사회보장 행정작용을 예방하는 제도를 설치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검토하여야 한다.
*이글은 전직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헌정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헌정"지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