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적자(赤資)의 사회

                                                                              국회의원 김춘진

인간이 무리생활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확장하여 하나의 사회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본능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일정한 제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국가와 법의 탄생의 기원이 아닌가 한다.

하나의 공동체가 질서를 유지하며 공생(共生)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법과 제도 뿐만 아니라 관습과 전통에 기반 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 되어야만 한다 . 즉 믿음을 통한 신뢰는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절차적 비용을 감소시켜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소 부족 으로부터 거대한 거번넌스(Governance)를 형성한 현대국가에 이르기 까지 신뢰는 사회를 안정화 시키고 서로를 믿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무형적 자산으로써의 기능을 해왔다.

새해벽두부터 우리나라는 “황우석 쇼크”를 통해 국가전체가 충격 속에 빠져 있다. 지난 몇 년간 황우석 과 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또는 미래의 동력으로 자리매김해 왔기에 국민들의 허탈감과 상처가 쉽게 가라않지 않는 것 같다. 어려운 경제여건과 민생고 속에서도 황우석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자존심이었고, 국민모두 그의 말과 행동에 신뢰(trust)를 보냈다. 정부에서는 그에게 요인 급의 경호를 했고,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연구비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서울대조사위원회의 발표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황우석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허탈하게 만들어 버렸다. 앞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검찰조사가 남아 있어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섣불리 이야기 하기 쉽지 않은 시점이긴 하나, 우리 사회 공동체에 미칠 신뢰의 훼손은 쉽게 아물지 않을 거 같다. 설마 했는데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나”라는 탄식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공통의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믿고 존중하며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만드는 신뢰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살리는 핵심요소라고 주장하였다. 사회적 신뢰는 선진국 진입의 전제조건이며, 그 수준이 곧 선진국의 척도라고 주장할 만큼, 신뢰는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자산(資産)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은 우리사회에 불신을 증폭시키고 신뢰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정치권 기업 등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끓는 물에 기름을 부어 넣는 격이 되었다.

경기회복, 교육개혁, 국가안보, 과거청산, 행정수도이전 등 우리 공동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할 의제(agenda)들이 산재하여 있는 시점에서, 신뢰 적자(赤資)는 우리 사회를 뒷 걸음질 치게 하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를 고민하게 만든다. 유형적 자산인 법과 제도야 현실과 맞지 않으면 “개정절차”를 통해 바꾸면 되지만, 무형적 자산인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더욱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에 어려움을 느낀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단면을 “신뢰 적자(赤資)의 사회”라 본다. 적자는 국가간의 무역에서 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불신을 양산할 때 이 사회는 만성적인 사회적 적자에 직면하게 된다. 불신의 만연은 사회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유형적인 생산성조차 낮추게 된다. 이는 곧 우리가 그렇게 기원하는 국민소득 2만 불과 선진국 진입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가 발전기 시대를 거쳐 오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조어를 생산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정부의 정책도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사회 내에 퍼져 있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신뢰했으며, 노동자는 사업주를 그리고 소비자는 생산자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외국에서 “갈등(葛藤)공화국”이라고 지칭할 만큼 작고 ·큰 문제들이 산재하여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구성원간의 믿음에 기반 한 공론화와 해결기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라도 정치권과 시민사회모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여, 신뢰구축을 위한 미래설계를 해야 할 때이다. 지금 어떠한 개혁 정책 보다도 우선순위 면에서 앞서는 것이 바로 “신뢰구축 정책”이라는 것을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확산하는 문화적 인프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2006년 한해는 그동한 키워왔던 불신의 벽을 허물고 사회적 신뢰에 기반 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양산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담당: 정책비서관 신연석(788-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