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침·뜸 위헌 결정과 의료계
'의사 독점권' 인정 않는 사회적 흐름 반영…향후 중대 변화 예고
[분석]헌법재판소는 지난 29일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에게 침과 뜸 등 대체의학 시술행위를 금지토록 한 의료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가까스로 비켜갔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려면 6명이 '헌법에 어긋난다'라는 의견을 내야 한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의료계의 예민한 사안인 대체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위헌 의견 재판관이 더 많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론의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모든 언론이 헌재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쏟아냈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대체의학을 전향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침과 뜸은 표면적으로 의료계와 큰 연관성은 없다. 이번 판결은 침과 뜸을 주요 치료수단으로 사용하는 한의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를 예의주시한 의료계 역시 속내가 편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큰 틀에서 의사의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더욱 빠르게 뿌리내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의협은 이번 판결에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사면초가 한의계…의료기기 분야 관심 더 높아질듯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는 한의계는 충격 그 자체다.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이 많았다는 점에서 언제든 뒤집힐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의협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30일 성명서를 통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한의학의 의료행위인 침·뜸 행위가 몰이해적인 세상의 잣대로 재단당함을 통분한다"고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한의협은 의료분쟁 발생 건수 중 침구시술이 36.5%에 달한다며, 한의사의 독점권을 보호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에 대해서도 "국민건강권을 위태롭게 한 판결이다. 일체의 불법 무면허의료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의원의 경영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침과 뜸을 비의사에게 허용하는 것은 결국 생존권 박탁을 의미한다. 침과 뜸 시술의 연장선에서 주요 수익원인 한약 판매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의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구당 김남수(灸堂) 옹, 관련 단체인 뜸사랑과 일전을 불사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이다.

헌재 결정을 계기로 한의계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더욱 관심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GE헬스케어가 한의원에 초음파기기를 판매한 것을 놓고 의협과 한의협은 상반된 시각을 드러냈다.

한의협은 특히 "의협이 한의사에게 초음파기기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일개 의료기기업체에 압력을 행사하는 행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서울동부지법이 최근 한의사의 IPL(Intense Pulsed Light) 시술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의료계와 한의계는 2000년대 이후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고소와 고발, 비난성명과 반박성명으로 이어지는 대립각을 세워왔다. 생존권 차원에서 현대 의료기기는 한의계가 반드시 쟁취해야 할 몫으로 떠오른 셈이다.

침묵 의료계…향후 파장 등 촉각

헌재 결정에 대해 의료계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의사 독점권 보호'라는 큰 틀에서 내부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진료행위에 대한 의사의 독점권을 인정해온 의료법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의료계는 사면초가에 빠진 한의계가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눈을 돌릴 것으로 본다. 이러한 갈등은 꾸준히 발생해왔다.

한의원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판례가 의료계에 불리하게 나타나고 있고, 대체의학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것도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단순히 대체의학 문제로 한정 짓기도 어렵다. 온전한 의사의 독점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넓게 보면, 물리치료사 단독개업 등 밥그릇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건강관리서비스, 전문자격사 완화 등을 추진하면서 의료시장에 대한 민간과 자본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의협 문정림 대변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의료법상 준용의 문제, 대체의학에 대한 사회적 흐름이 바뀌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 계류 중인 침구사법 등 향배 주목

대체의학 제도권 진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법안이 침구사 관련 법안이다. 현재 이 법은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태다.

김 의원은 국민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급증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검증을 받은 침과 뜸은 침구사를 통해 서비스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법안은 침구사를 의료기사 직종으로 인정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담았다.

그러나 한의계의 거센 반발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료기사단체들도 침구사의 의료기사 편입을 반대하고 있다.

침구사를 교육하는 학제가 전무한 상태에서 동일한 직종으로 인정할 경우 의료기사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이 법안을 담당하는 복지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입법화도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그러나 대체의학 활성화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면 논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침구사 관련 법안 발의 민주당 김춘진 의원 인터뷰]

본지 통화에 응한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대체의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의료계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안다.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과의사이자 재선 의원인 김 의원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복지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18대 국회 상반기에서는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하반기에는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체의학 활성화를 주장해온 김 의원은 침구사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춘진 의원은 "대체의학에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다. 고용없는 성장이 뿌리내린 상황에서 보건의료가 사회적으로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 의료법에 묶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대체의학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선 삶의 질이 매우 중요하며, 합리적 수준에서 대체의학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할 것"이라며 "의료인도 국민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선 이러한 자세로 넓게 볼 필요가 있다"며 침구사 입법화를 주문했다.

김 의원은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비의사의 문신 시술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문신을 의사만 할 수 있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이런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다양한 일자리 창출이 제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의료계가 이를 자기영역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크게 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대체의학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각이 변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의료계가 대체의학을 열린 마음으로 봤으면 한다. 전문가로서 포용된 마음으로 대화와 소통이 이뤄졌으면 한다"며 의료계의 전향적 자세를 주문했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기사등록 : 2010-08-02 07:15